대구여성아카이브 남일동7부인

남일동7부인

남일동7부인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111년 전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

111년 전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자 여성들도 나라의 빚을 갚고자 은반지, 은장도를 의연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여성조직을 만들어 전국 여성운동의 효시가 되었던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2015년에 비로소 그녀들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경주 여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취지문

1.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란?

  •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남성 중심으로 펼쳐지던 국채보상운동을 여성의 영역까지 넓힌 동시에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로 인정한 우리나라 근대 여성운동의 효시로 기억되고 있음.
  • 국채보상운동은 처음엔 담배를 끊는 ‘3개월 단연’을 주된 방법으로 제시해 남성이 중심이 되는 남성 중심적 운동이었지만 여성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음. ‘부인이라고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의미로 여성도 의연금을 내기 시작했고 여성들이 처음 조직을 만들어 의연금을 낸 것은 1907년 2월 23일, 대구 남일동 부인 7명이 결성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임.
  • 대구여성가족재단의 연구 결과,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결성 장소는 남일동 109번지인 것으로 드러남.
    • 정경주의 고손자 서헌주는 “당시 일본인에 의해 기록된 호적에는 대정 4년(1915년)에 여농 서병규의 친부 서상우 어른께서 돌아가신 후 대정 11년(1922년)에 남정 109번지에서 봉산정 51-1 번지로 이사를 하셨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07년에는 남정 109 번지가 7부인이 모여 거사를 하였던 남일동의 위치가 아닐까 합니다”라고 증언
    • 대정14년(1925년) 토지대장을 확인해보면 남정 109번지 토지 주인이 서병규로 나타남. 이를 통해 패물폐지부인회가 취지문을 작성한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이 남일동 109번지로 추측할 수 있음. 이 토지대장에 따르면 당시 서병규의 자택은 1,207㎡(366평) 정도 규모임.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2. 111년 전,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

  • 남일동의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여성계의 첫 번째 단체이자 또한 첫 번째 패물의연 단체로, 여기에 자극되어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운동이 펼쳐짐.
  • 그러나 지금까지 패물폐지부인회 구성원의 이름은 연구되지 않았고, 1907년과 똑같이 취지문에 나타났던 ‘정운갑 모 서씨, 서병규 처 정씨, 정운화 처 김씨, 서학균 처 정씨, 서석균 처 최씨, 서덕균 처 리씨, 김수원 처 배씨’ 로 불리고 있었음
  • 2015년 대구여성가족재단이 100여년 전 전국 최초로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의 깃발을 들었던 여성 조직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여성들의 이름을 찾는 연구를 진행한 결과, 7명 중 6명의 이름을 발굴함.

3.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7부인은?

서채봉 여사

  • 정운갑 모 서씨는 서채봉(徐彩鳳, 1859-1936)여사. 정봉원의 부인으로, 취지문에는 유일하게 정운갑의 모(母)라는 어머니의 자격으로 등장
  • 서채봉 여사의 직계후손 정우영(고손자) 씨에 따르면 “어머니로부터 들은 기억으로는, 이 할머니는 호랑이같은 분이었다. 기개가 대단하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증언

서채봉 여사

정경주 여사

  • 서병규의 처 정씨는 정경주(鄭瓊周, 1866-1945) 여사로, 일부에서 최경주로 잘못 알려진 인물로 이번 연구 과정을 통해 정경주임을 확인
  • 정경주는 실질적으로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를 조직하고 이끌었던 리더이자 취지문을 직접 작성한 장본인으로 추정됨. 서학균, 서석균(서철균), 서덕균이 정경주 여사의 세 아들임을 고려할 때 정경주 여사는 세 며느리들과 함께 뜻을 모아 취지문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 정경주 여사의 고손자 서찬주 숙명여대 교수는 “할머니(정경주의 손부)의 말씀에 따르면 국채보상운동 당시 여자들이 나와서 줄연설을 했다고 한다. 특히 정경주 할머니는 한마디를 해도 호소력있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취지문도 정경주 할머니가 쓰셨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증언
  • 정경주 여사의 고손자인 서헌주 미국 버지니아주 목사는 “정경주 할머니는 학식이 많으시고 절세의 미인이시며 봉건사회의 대가족을 자애로움과 엄격함으로 거느리신 여장부라고 들었다”면서 “저희 할머니(정경주의 손부) 말씀으로는 정경주 할머니는 성미가 까다로워 모시기 힘든 점도 있었지만 품위와 권위가 있어 진심으로 흠모하였다 한다. 아마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아 남편이 국채보상운동에 투신하여 고군분투하실 때 자부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뛰어든 결정도 이 어른이 하셨을 것 같다”고 증언
  • 이로써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7부인의 중심 활동을 했던 여성이 바로 정경주 여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드러남.

정경주 여사

김달준 여사

  • 정운화 처 김씨는 김달준(1877-1956) 여사. 정운화는 국채보상운동에서 ‘정운화’로 표기되기도 하고 ‘정운하’로 표기되기도 함.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비에는 ‘정운하’로 표기되어 있는데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들의 표기가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가계도를 바탕으로 찾은 결과 정운화(鄭雲華)가 정확한 이름임을 알 수 있었음.

김달준 여사

정말경, 최실경, 이덕수 여사

  • 정경주의 세 며느리는 정말경, 최실경, 이덕수.
  • 정경주는 슬하에 3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서학균의 처 정씨가 정말경(鄭末慶, 1881-1932), 2남 서석균(철균)의 처 최씨가 최실경(崔實慶, 1888-1965), 3남 서덕균의 처 이씨가 이덕수(李德秀, 1889-1955)임.
  • 최실경의 아버지는 최대림(崔大林)으로, 대구광학회 설립에 동참해 활동했으며 국채보상운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던 인물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보임.
  • 이덕수는 대구에서 유명한 오산 이종면(李宗勉, 1870-1932)의 딸로 추측됨. 이종면과 서병규는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함께 했으며 연배도 1살 차이로 비슷해, 여러 가지 인연으로 당시 사돈을 맺지 않았을까 추측됨. 오산 이종면은 대구 협성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이자 경제인이였으며 대구광학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계몽운동을 시작했으며 대한협회 대구지회 활동도 기록에 남아 있음.

4.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이름 발굴의 의의

  • 남일동의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여성계의 첫 번째 단체이자 또한 첫 번째 패물의연 단체였지만 지금까지 역사 속에 묻혀 있었음. 이름을 발굴한 것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활약상을 조명할 수 있었음.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이름을 찾아낸 성과는 21개 매체 29건의 보도가 되는 등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음.
  • 남일동의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여성계의 첫 번째 단체이자 또한 첫 번째 패물의연 단체였지만 지금까지 역사 속에 묻혀 있었음. 이름을 발굴한 것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활약상을 조명할 수 있었음.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이름을 찾아낸 성과는 21개 매체 29건의 보도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만 불렸던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찾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여성의 역사를 현대로 불러내 가리워졌던 ‘대구여성사’를 복원하는 작업임
  • 남일동의 패물폐지부인회는 전국 여성계의 첫 번째 단체이자 또한 첫 번째 패물의연 단체였지만 지금까지 역사 속에 묻혀 있었음. 이름을 발굴한 것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활약상을 조명할 수 있었음.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이름을 찾아낸 성과는 21개 매체 29건의 보도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우리나라가 내년 3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할 후보로 13건의 후보 가운데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과 함께 최종 선정되었으며,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의 이름 발굴 성과도 이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됨.

5. 향후 정책 과제

  •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이름 발굴 성과를 계기로 근대기 대구 여성의 애국조직 및 여성 인물을 추가로 발굴하고 연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
  •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7명의 부인은 연구 성과를 넘어서 향후 대구 여성의 주요 인물로 현창할 수 있으며 발굴된 스토리를 문화 및 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필요가 있음.
  •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가 결성된 장소일 가능성이 큰 곳이 중구 남일동 109번지 일대인 만큼 7부인의 역사적 활동 공간을 밝혀야 할 것임.
  • 향후 대구여성탐방로 ‘반지길’, ‘눈썹길’ 등에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스토리를 포함시키고 홍보함으로써 전국적인 여성운동의 명소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함.

현재 진골목 일대에 그려진 정경주와 서병규의 벽화

내용문의

(재)대구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최세정 sky@dwff.or.kr ( 053-219-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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